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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도박중독 Essay] 1장. 판치기, 모든 것의 시작Essay 2025. 8. 7. 06:58
오늘의 날씨는 맑았다.
햇살이 대문을 뚫고 들어와 마루바닥에 떨어졌다.
엄마는 얼음을 갈고, 나는 수박맛 시럽을 기다렸다.
빙수는 언제나 여름방학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 없는 종소리였다.
"엄마! 오늘 현섭이네 가는 날이야, 용돈 좀 줘."
"그래, 삼천 원 줄게. 나갈 때 음료수 꼭 챙겨가고."
"응! 고마워~"
그때 나는 삼천 원이 꽤 많은 돈이라고 생각했다. 음료수 두 병을 사고도 남는 금액.
하지만 오늘의 나는 이 삼천 원을 가지고 '돈의 재미'를 처음으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.
그리고 그 재미가, 나를 삼켜버릴 괴물의 첫 발톱이라는 것도 몰랐다.
▣ 책 위의 동전과 손바닥
현섭이네 집에서 우리는 동전을 한 움큼 모아 책 위에 올려놓았다.
동전들이 쌓여있는 그 위에 손바닥을 얹고 한 번 툭 쳤다.
동전들이 바닥으로 흩어지며 앞면과 뒷면이 마구 뒤섞였다.
그중 같은 면이 나온 동전들을 모두 따먹는 규칙이었다.
처음에는 단순한 놀이 같았지만,
동전 하나, 둘이 내 손에서 사라지는 순간마다
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.
잃어도 또 하게 되는 이유는 이겼을 때 그 짜릿함 때문이었다.
▣ 매번 지면서도 왜 계속했을까?
질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.
“내가 왜 또 걸었지?” 생각하면서도,
다음 판이 시작되면 다시 동전을 모아 손바닥을 얹었다.
그건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,
“이번엔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”는 희망이었다.
그리고 무엇보다, 놓고 싶지 않았다.
지루한 일상보다, 내기 동전 따먹기가 더 재밌었고
단짝 친구와의 소소한 경쟁이 더 짜릿했다.
그때는 몰랐지만, 그건 분명히
“작은 도박”이었다.
▣ 어린 도박꾼의 시작
중학교 1학년 내내
나는 매주 용돈을 손에 쥐자마자
친구와 내기를 했다.
판치기에서 시작된 이 작은 도박은
점점 더 커졌다.
동전 따먹기에서 돈으로, 돈에서 시간으로,
시간에서 생각과 감정까지 먹어치우기 시작했다.
“다음엔 이기겠지.”
이 한 문장은 수십 년 동안 나를 따라다닐
마법의 주문이 되었다.
▣ 나는 언제 도박에 빠졌는가?
그 날이었을지도 모른다.
빙수의 얼음이 다 녹아버리고,
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동전을 쳐대던 그 날.
내 안에 어떤 존재가 눈을 떴다.
그 존재는 오랫동안 조용히 숨어 있었고,
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자라났다.
지금 생각해보면,
나는 그날 도박의 첫 경험을 마쳤다.
단순한 내기가 아니라,
잃었는데도 그만두지 못하는 감정.
그 감정이 내 안에 씨앗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.
다음 장 예고
화려한 그래픽과 배경음이 흐르던 MMORPG 게임 속,
리니지라는 이름 아래 '슬라임 경주'라는 도박장이 나를 맞이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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